'2007/05/12'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7.05.12 이정식 선수 어머니 4
  2. 2007.05.12 간지 작살 양신 2
  3. 2007.05.12 왜 양신이냐고? 2
  4. 2007.05.12 예의바른 권혁 6
  5. 2007.05.12 20070510 권혁 투구모습들 7
정식선수 경기때마다 와서 응원하시는 부모님...
경기후 버스 기다리고 있는데.. 부모님들이 지나가셔서... 불러서 사진찍어드렸삼..
담에 정식이 한장 뽑아다 줘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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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강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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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 작살 양신

경기중 2007. 5. 12. 01:09
헬멧 쓰는 모습도 어쩜 저리 간지가 철철..... 넘 멋진거 아니삼?


서부영화 같네.. .왠지 시가를 물고 잇어야 할듯한 자세..
만화에서 독고탁 같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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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강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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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양신이냐고?

경기중 2007. 5. 12. 01:04
왜 양신이냐고 타팀팬들이 묻는다..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을 치기때문에?

아래 사진들과 같은 모습때문이기도 하다....

투수들은 절대 좋은공을 주지 않는다... 걸러도 그만이라는 생각에 어처구니 없는 공들만 준다.
양신은 철저하게 투수가 실투하여 가운데로 몰리는것만 노려쳐야 한다... 그럼에도 홈런 1위인건 정말 대단한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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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폼이 흐트러져서 평범한 내야 땅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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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땅볼에도 저 산만한 덩치로 양신은 전력질주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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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헬멧이 벗겨 지도록 뛰는 모습을 보면.. 참 많은걸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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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타자이기에... 평균 2~3회 마다 돌아오는 한타석이...아쉽기만 할것이다...
삼진이나 범타로 물러나면... 세상을 다 잃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덕아웃을 향한다.
그는 진정 팀과 야구를 사랑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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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강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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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바른 권혁

경기중 2007. 5. 12. 00:52
김동주선수의 파울타구에 박기택 주심이 부상을 입어 교체가 되었다..
이전 안경현선수때도 권혁선수의 공에 박기택주심이 쓰러져서 한참을 괴로워했는데..

권혁선수가 모자를 벗어 인사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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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강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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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신문
원본링크 :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0488&yy=2007

[최종문의 펀펀야구] 키작아 야구 포기했던 권혁
2004년 10월 16일. 잠실구장의 검은 전광판에 노랗게 세 숫자가 새겨지는 순간 일제히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누구나 던지고 싶지만 쉽게 던질수 없는 156km라는 숫자였다. 이 공을 던진 주인공은 불과 5년 전만 해도 야구를 하고 싶어도 갈 곳 없던 평범한 소년, 권혁이었다.  

성광중 야구부원 권혁은 다른 투수에 비해 키가 작았다. 수창초교 시절의 키(160cm)에서 더 자라지 않았다. 작은 키로 투구에 힘이 실리지 않아 하루하루가 힘들었던 권혁은 2학년 중반 어느날 야구를 그만두고 말았다. 다시 책을 잡았고 경상공고에 진학했지만 막상 선반이나 용접 등 기술 공부는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1학년 초반부터 키가 조금씩 자라더니 중반에는 어느새 180cm로 훌쩍 커 버린 것이었다. '왜 진작에 키가 크지 않았을까?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사춘기의 본격적인 고민은 그 때부터 시작됐고 건성으로 다니던 학교에서 돌아와 동네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던 권혁은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불현듯 수창초교 시절 에이스로 나서 우승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부쩍 커진 자신의 덩치라면 그때만큼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을 정하고 개인 훈련을 시작할 무렵 지인을 통해 당시 경북고 감독에서 물러나 잠시 쉬고있던 서석진 씨를 소개받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홀로 꾸려가는 가정 형편에 다시 돈이 많이 드는 야구부로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2학년 중반에는 키가 186cm까지 자랐고 막연한 꿈 만으로 개인훈련을 하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1999년 6월 대구 지산중학교의 운동장이 내려다 보이는 한 아파트의 창 곁에서 오대석 감독(당시 포철공고 감독)은 오랫동안 운동장 한곳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한 학생이 공을 던지고 있었고 그렇게 그들은 우연히 만났다. 포철공고는 권혁에겐 은인같은 존재였다. 학교의 지원이 많아 돈이 별로 들지 않았고 우연을 인연으로 생각한 오 감독의 배려로 빠르게 몸을 만들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해 2학년 말 처음 경기에 등판한 권혁의 투구는 137km를 기록했다. 키가 187cm로 자란 3학년 때는 평균구속 142km를 기록하면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빠른 스피드를 만들어낸 선수로 주목 받았고 그 해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았다.

프로에 와서도 놀랍게도 키는 계속 자랐다. 2년새 5cm가 더 자라나 191cm가 된 권혁은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 구원 등판, 156km라는 꿈의 스피드를 기록했다. 6회말에 등판해 150km를 상회하는 강속구로 11타자를 연속으로 처리하면서 한점의 리드를 지켰다. 플레이오프의 향방을 삼성쪽으로 기울게 한 약관의 투수에게 보내는 3만 관중의 찬사는 마치 인간승리의 축가 같았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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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강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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